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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근 선교사님 선교편지

  • Ungarn
  • Mar 08, 2009
  • 7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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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삶이, 내 초상화 입니다.(초상화 같은 다큐멘터리)


"모자 뒤집어 쓰라."
동구의 바람이 너무 추우니까, 따뜻한 곳 캘리포니아에서 오신 이 목사님이 배려하여 한 말씀 입니다.
"예? 그건 누명인데요."
모자달린 외투를 입은 발랄한 인턴선교사 민경이가 날아온 핑(ping)을 퐁(pong)으로 친 대답입니다.
우리 모두는 잠깐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잊고, 우하하하 웃었습니다. 뒤집어쓰는 것은, 누명!

모스크바역 광장은 지붕이 없어서, 일주일 5일 '급식 및 거리사역' 중에서, 가장 추운 곳 입니다.
또 하필 일 년 중, 이상하게도 화요일에 비나 눈이 제일 많이 오네요.
그런 날은 할 수 없이 광장의 간이음식점 처마 밑으로 가서 말씀 전하고, 섬김이들이 배식하는 사이,
저희 부부는 그들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개인 대화를 많이 합니다. "요즘 어때?" 하면서.

그도 노숙자인 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대문니가 썩어서... 이빨과 신발을 보면 노숙자임을 압니다.
모습은 젊었지만 초라하고, 영어로 말해서 루마니아에서 온 집시 계통인가 보다 했지요.
알고보니, 부르셀-벨지움 영화 학교(cinema school)를 다니는 '모하메드'라는 모로코인으로
'부다페스트 필름 아카데미'에 한달간 왔답니다. 아프리카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한 경험도 있대요.

"당신을 찍고싶은데 허락해주십시오! 지난 주 화요일에도 관찰했습니다. 다른 뭐가 있어서..."
'모하메드'는 모슬렘 일텐데, 나는 이슬람교도의 참수장면이 떠올라 먼저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거리의 교회' 성도들이 싫어할텐데요. 다 범죄경력이 있어서 자기얼굴 찍히는 걸 싫어해요."
나의 남편 흥부선교사가 정중한 거절을 한 셈 입니다.
"아니, 그들 말고, 당신의 초상화(portrait)를 '15분짜리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다는 거죠."

그후 그로부터 이메일이 왔습니다.
"많은 급식 모습을 보아왔지만, 영의 양식(Spiritual Food)을 먹이는 것은 처음 봤으며,
목사가 노숙자들을 만나러 일일이 가서 대화하고 포옹해주는 모습이 아름다우며,
한국인 선교사가 헝가리어로 외치는 Intercultural한 Image를 찍고 싶다."는 것입니다. 끝에는,
"부다페스트 필름 아카데미아가 당신에게 공식적인 편지를 보낼 것 입니다." 고 적혀 있었습니다.

허락보다도 우선 우리집에 한국음식으로 초대를 했더니, 동료 '지에드'와 '더니'를 데리고 왔어요.
'지에드'는 튀니지 사람으로 같은 모슬렘이고, '더니'는 헝가리인 인데, 알고보니 유대인 이네요.
우리는 모두 깜짝 놀라면서, 감탄 했습니다. 한 식탁에,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모인 것입니다.
흥부 선교사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으로, 학부 때는 연기를, 대학원에서는 연출 전공 했다니,
서로 더욱 친숙해진 후, 다음 화요일 이른 아침부터 그들이 촬영을 하러 왔는데, 폭설이 내렸습니다.
화요일이 아니라고 할까봐, 이번 겨울 중 가장 많이 눈이 내린 날 말입니다.

그후 인터뷰도 한다며 우리 선교센타에 서너 번 더 왔는데, 그때마다 저는 밥순이를 했습니다.
그들이 부다페스트를 떠나기 전 날 또 왔는데, 나중에 제가 역에 데려다주면서 말했습니다.
"5년 뒤에 또 와! 그때 우리가 어떻게 하고 있는가 또 찍어. 10년 뒤에도 와서 우리가 뭐하고 있는가 봐!"
한국의 '김기덕' 감독을 잘 안다는 그들에게, 요즘 우리나라의 '워낭소리'에 대해서도 얘기해줬어요.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져서 저희가 괜한 누명 뒤집어쓸까봐 두려운 마음도 Good Bye~ 떠나보냈습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행11:9)


2. 헝가리 교계 목사님들 조찬 기도회(성장과 누명)


거리사역을 하면서 덤으로 얻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 이지요.
군인과 사람을 구분하거나, 여자와 아줌마를 차별하는 것처럼 우습게 들리겠지만, 노숙자 아닌 사람들!
우리 사역을 구경하다, 기타반주로 4년간 섬긴 뒤, 파키스탄 선교사로 간 "피떼르" 같은 사람들 말이죠.
피떼르를 이어, 그의 친구 '디네쉬'가 신디사이저 반주로 돕는데, 헝가리 애국가 반주가 기막힙니다.

금요일마다 남부역을 지나가던 '어구스톤' 목사님은, 그만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우리 '거리의 교회' 예배와 급식을 지켜보다가, 얼른 들고있던 바이올린을 꺼내 연주해주셨어요.
한번은 그에게 설교를 부탁했더니, 화답인지 자기 교회 주일예배 설교를 부탁해와서, 동역했습니다.
그는 헝가리 개혁교회 목사로, 미국과 영국에서 학위를 딴 엘리트며, 헝가리 OM의 이사 이십니다.

월요일 동부역에서는 급식 전 흥부선교사가 온 힘을 다해 영의 양식을 나눠주고 있을 때,
지나가던 '써버 다니엘' 목사님이 딱 멈춰 섰습니다. 말로만 듣던 그 분을 우리는 처음 뵌 것 입니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어하시길래 마이크를 드렸더니, 감동의 감동을 해서 축복기도해 주시네요.

바로 다음날, '헝가리 교계 조찬 기도회' 초대를 몇 주 전에 받아둔 터라, 이른 아침 달려갔더니...
맨 앞에 '써버 다니엘' 목사님이 계시네요. 아하! 설교를 맡아, 부다페스트로 오다 우릴 만나신 겁니다.
아직 기도회 시작 전이라,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그 목사님이 큰 소리로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어제 동부역에 내려서 오다가 이 한국인 선교사를 만났는데, 오늘 여기서 또 만나네요. 하하하"
기도회를 마치고, 간단한 조찬을 나누며 대화하다 보니, 각 교단과 선교단체 대표들이 여럿 오셨네요.
나의 남편은 너무나 기뻐합니다. "햐! 이렇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니, 헝가리 교회에 소망이 있습니다."

흥부 선교사의 꿈은 그겁니다.
"오늘은 우리 '거리의 교회'가 이 조그만 길에서 기도하지만, 내일은 온 세상의 길로 기도가 흘러가는 것!
비록 길거리에서 밥을 얻어먹은 노숙자들이 머리를 모아, 개인과 가정, 교회와 국가를 위해 기도하지만,
길을 지나가던 '쇼염 라슬러' 대통령도, '주르차니 페렌츠' 수상도 함께 기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위해, 나의 남편이 무릎꿇고 드리는 매일 첫 기도는, "주님! 오늘도 저를 성장시켜 주옵소서."

누명은 뒤집어쓰는 것 입니다. 예수님도, 링컨도... 누구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뒤집어 씌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누명으로, 성장을 뒤집어 씌우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열매있는 나무에 돌을 던집니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했습니다. 먼 훗날... 그날이 비록 주님 앞에서 일지라도.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 5:11)


2009. 3. 6. 부다페스트에서, 흥부 선교사 김흥근의 서명희 나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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